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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찾아온 전쟁, 그리고 기근
때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혼란스러운 기류가 돌던 폴란드입니다. 폴란드는 당시 독일이 가졌던 대표적인 전술인 전격전으로 순식간에 독일의 점령국이 되어버립니다. 기존에 전쟁이 걸렸던 시간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진격속도였고, 보도 듣도 못한 새로운 전술에 폴란드군은 무차별로 피해를 받게 됩니다.
당시 폴란드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피아니스트를 치던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에이드리언 브로디)은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여동생은 변호사로 당시로서도 상당히 부와 명성을 가진 가족과 함께 살았으나 전쟁의 영향력은 모든 그의 가족의 부와 명성을 앗아가게 됩니다. 영화 내 가족이 함께하는 장면에서 유독 그들의 식사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영화 초반 본격적인 전쟁의 영향을 받기 전에는 비교적 호화로운 음식과 술을 함께 먹고 마시며 의견을 나누지만, 게토에 들어가서부터는 모든 배급이 끊겨 묽은 스프와 같은 상당히 초라한 식단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이 인상깊습니다. 급기야 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에는 각자 가진 돈을 모아 간신히 캬라멜 하나를 사게 되서 서로 나눠먹게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너무나도 극적인 장면으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당시 전쟁이 일반인들에게 줬던 영향은 적나라하게 기억속에 자리잡게 됩니다.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유태인, 그러나 그 속의 한 지성인
전쟁 당시에 가장 돈을 벌기 힘들었던 직업군은 바로 선생, 학자, 연주자와 같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공부를 하거나 즐거움을 찾을 때 빛을 발휘하는 분야였습니다. 먹을 수 있는 식량도 없고, 돈도 없는 상황에 이러한 것들은 사치로 취급될 수 있었고, 슈필만은 그러한 상황에서 먹고살기 위해 게토에서 갖은 방법을 몰색합니다. 그렇게 악천고투 속에서 살아남던 슈필만의 가족은 게토 안에서 차마 사람이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독일군의 유태인 학살 장면들을 여럿 목격합니다.
비슷한 시간대를 공유하는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에도 수용소에 갈 유태인들을 태운 화물칸 기차 안에 유태인들이 목이 마르다고 소리를 내자 보다못한 쉰들러가 호스로 물을 뿌려 많은 이들을 살려냅니다. 그 때 한 독일군 장교가 '어디 불이라도 났냐'며 그들만의 농담을 합니다. 마치 그 씬과도 같이, 당시에 독일군들은 유태인은 인간도 아닌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보던 시절이었으며, 그렇게 보는 유태인들을 얼마나 참혹하게 대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게토에서의 산발적인 봉기에서도 살아남고, 바르샤바 봉기에서도 살아남은 슈필만은 이 과정속에 완전히 폐허가 된 게토로 다시 숨어들어가 먹을것을 찾게 됩니다. 이미 몇번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나쳤을 곳들이라 먹을만한 식량을 찾는것은 쉽지 않았지만, 가까스로 찾은 캔을 열려하던 중 한 독일군 장교를 만나고, 여기서 슈필만은 전쟁통 속에 운명의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이 연주를 하고 나서 죽을지, 살지조차 가늠이 안되고, 오직 절망이라는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어 차거운 공기와 함께 어우러졌던 그 순간 슈필만은 독일군 장교의 요구로 피아노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독일군 장교의 행보가 이어집니다. 연주를 듣고 감명받은 장교는 이후로 몇번을 찾아와 슈필만이 숨어있는 게토 근방의 전후상황을 알려주고, 먹을 것을 직접 챙겨서 가져다줍니다. 당시에 숨어있는 사람들로선 절대 먹을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빵과 잼은 그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슈필만에게 몸과 마음의 큰 양식이 되어주고,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는 완전히 폐허가 된 게토에서 폴란드 국가를 듣고 나와 소련군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그는 게토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극소수의 유태인이 됩니다.
이후 모두의 예상대로 그 독일군장교는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독일군인 포로들 속에 있던 그는 유태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자신이 슈필만을 구해준 것을 말하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이름을 얘기하지 못합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슈필만과 아는 사이었고, 전후 슈필만과 그는 재회하고 독일군 수용소가 있던곳을 찾아가지만 수용소 자체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인간군상은 어디에나 있었다
본 영화는 어느 한 폴란드의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절망의 홀로코스트가 이루어지던 유럽, 게토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주인공부터가 실제인물이었기에, 주변 인물들이 모두 실제 슈필만의 가족, 지인을 상당수 참고하여 영화 각본이 제작되었고, 그만큼 당시 고증상황에 맞추어 연출을 진행한 것이 이 영화의 돋보이는 특이점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당시 상황에 핍박받던 유태인이라고 영화에서는 그들을 착한사람으로만 묘사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 영화는 플레이타임 내내 숨어지내는 같은 유태인의 음식을 뺏어먹는 유태인, 슈필만의 은신처가 발각되자 슈필만을 향해 유태인이라고 소리지르는 여자, 나치와 협력하여 유태인 경찰이었지만 수용소에 끌려가던 슈필만을 수용소행 무리에서 무리하여 빼주었던 슈필만의 친구 등 전쟁 속에서 보인 여러 인간군상들을 가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독일군들이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영화 내 나오는 한명한명이 하나같이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죽이는 장면도 여러번 나옵니다. 그러한 살인들이 정당한 이유나 절차를 거친것도 아니고, 즉결적으로 진행됩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순식간에 유태인들을 선택하여 무차별적으로 죽이니 더욱 더 공포감은 배가됩니다.
그러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그렸던 영화속 폴란드였기에, 일반 군인보다 높은 계급인 독일군 장교가 슈필만을 만났을 때, 그를 살려준 것은 모든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습니다. 실제로 교사 출신이었던 독일군 장교인 빌헬름 호젠펠트(토마스 크레치만)은 사실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부터, 유태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유태인들을 그저 죽이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행렬에서 세워 마음에 들지않는 유태인들을 솎아내 죽이던 장면에서 독일군이 유태인을 'Du(너)'라고 하대하며 불렀던 반면에, 호젠펠트 대위는 슈필만을 'Sie(당신)'으로 칭해 슈필만과 대화를 이어갑니다. 식량을 주며 '자는 데 불편함은 없어요?'라고 묻거나, 소련군의 진격으로 퇴각하자 몇일 분의 식량과 함께 자신이 입던 육군 장교용 코트를 주는 그는 2차 세계대전 속 마냥 유태인 청소라는 집단광기 속에도 휘둘리지 않은 지성인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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